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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 미야베 미유키

양장군 2009. 10. 21. 12:48

모방범

저자: 미야베 미유키
역자: 양억관
출판사: 문학동네

드디어 읽었다.
후덜덜한 페이지수의 압박따위 읽는 순간 불태워 버렸어 하얗게..(하아..?)

낙원을 먼저 읽은 것이 너무나도 아쉽고 후회가 되었다.
크게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뭐랄까 결말을 미리 알고 보는 기분이 들어, 특히 종반부에 다다라서 TV쇼에서 '아미가와 고이치'와 '마에하타 시게코'의 결말이 눈에 보여 사건에 완전하게 빠질 수 없었다.

모방범은 크게 3부로 나뉘어진다.
1부에서는 도쿄, 아니 일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유괴 연쇄 살인사건'에 대해 초점이 맞춰지고, 사건의 등장인물들이 소개된다. 그리고 살인 사건의 범인이 밝혀진다.
2부에서는 그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밝혀진 인물들에 대한 과거의 이야기와 사건의 스토리,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와 등장인물에 대한 은밀(?)한 문장들이 깔린다.
3부에서는 드디어 밝혀진 숨겨진 등장인물과의 대결, 그리고 결말이 이루어진다.

도대체 이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 길고 긴 글을 5년씩이나 연재한 것일까.
그리고 그 에너지와 끈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동안 읽어왔던 미야베 미유키의 여타 소설과는 달리 촘촘하게 꽉 짜인 니트와 같이 짜임새 있는 구성이 보였다. 이 사람은 이런 장편에서 힘을 더욱 발휘하는 사람일까. 그렇다면 전에 읽었던 소설들이 산만하고 왠지 산으로 가는 진행과 풀다만 것 같은 사건들이 혼재했던 것이 이해가 간다.

모방범에서 힘을 다 뺐던 것일까.
무튼 모방범의 힘은 대단했다. 
정말 간만에 책이 궁금해서 잠들지 못하고, 머릿속이 온통 책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모방범'이라는 책의 제목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결국 그 답은 종반부에 후루카와 마리코의 할아버지인 '아리마 요시오'의 입을 통해 설명된다.


미야베 미유키는 특히나 일본의 사회 분위기나 정서, 그 시대의 젊은이들의 사고 방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많이 반영하려는 듯 하다. 모방범에서도 마찬가지로 거품 경제가 꺼지고 나서의 일본 사회상과 그 시대에서 자라온 젊은 청소년들의 사고 방식과 생각으로 인해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해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중 무서운 것은 (나로서는 이해가 쉽사리 가지 않지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이 가장 두렵게 여기는 것이 바로 '자극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지루하게 사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인내를 가지지 못하는 현대의 인간들이 언제든지 자극적이고 허세와 호기를 부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격적이고 포악한 본성을 드러내더라도 재미를 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나 역시도 스스로 주체하기 어려운 '욱'하는 성질이 인간관계 또는 사회생활을 어렵게 하거나 지성인이 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라는 의식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있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성질을 스스로가 어떻게 알고 생각하고 지켜내느냐 하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아시가미 고이치'나 '구리하시 히로미'처럼 미처 본인은 깨닫지도 못하는 본성에 길들여지고 지배되는 것과 다르게 말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은 단순하지가 않다.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사건의 한 꺼풀 아래 숨겨진 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철저히 계산되고 계획되었으며 연출된 '연쇄 유괴 살인사건' 이외에도 잔혹하게 가족이 살인된 사건의 피해자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또한 그 사건의 가해자의 가족을 함께 등장시켜 각자의 생각을 대립시킨다. 그 외에도 피해자의 유족을 공허한 마음을 이용하여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 뚜렷한 목적 없이 흥미 본위로 르포를 시작하는 작가(물론 결말을 그렇지 않고, 사실은 성실한 사람이다. 단순히 흥미 본위라고 하는 것은 사건에 개입되기 전까지 그 역시 관찰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 등 수많은 인간 군상이 등장하면서 치밀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남겨진 자들의 고통과 심정, 사건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관객과 언론의 객관적이려는 판단과 상업성을 위한 관심, 가해자들의 일그러진 본성..
모든 것들이 모방범 안에 그려지고 있다.

# 살인자..
인간이란 무의식 속에 누군가를 모방하고, 스스로를 과시하려고 하는 욕망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나 역시도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이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인간을 장기의 말처럼 쓰고 버리는 그 근원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참지 못하기 때문? 나보다 그 욕망이 더 강렬하기 때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때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수긍할 만한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모방범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왠지 큰 숙제를 마친 것처럼 후련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내 머릿 속에 책에 관한 내용이 맴돌아서 어지러울 지경이다. 
이 여운을 얼마 동안 가지고 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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