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양장군 in Sweden / Germany

피엘라벤 클래식 2015 둘째날 본문

Travel/피엘라벤 클래식 Fjällräven Klassikern 2015

피엘라벤 클래식 2015 둘째날

양장군 2015. 8. 9. 21:09

피엘라벤 클래식 둘째날

케브네카이세 - 싱이 - 섈카 27.5km 
 
둘째날 아침 -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캠프 사이트를 돌아볼 새도 없어서 이제서야 눈 비비고 돌아보기 시작했다. 근데 눈은 왜케 빨리 떠지니?!!! 6시에 걍 눈이 떠진다.  



백야

그러고보니 북쪽에 오면 백야를 경험할 수 있을거라고 하던데 이미 하지를 지나서 그런 것은 거의 없었다. 새벽 중간에 아마 세네시쯤 해가 텐트를 뚫고 정면으로 쏟아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밤 10시나 11시가 되면 하늘도 어둑어둑해지고, 흐리거나 하면 더욱 밤이 금세 와서 기대했던 눈부셔서 잠을 못자겠어!! 이런 건 없었네  






아침 일과
- 여전히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그래도 화장실은 가고 얼굴은 씻어야지 
- 어제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케브네카이세 산장을 둘러봄. 그래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음. 여전히 정신이 몽롱. 이해가 안됨 ㅋㅋㅋ 
- 짜왕 형님들 및 주변에 텐트친 사람들은 이미 우리가 준비하는 동안 출발하셨다 ㅠㅜ 덕분에 우리는 늦은 것은 아닌지 하는 조바심이... 게다가 오늘은 4박 5일 중 가장 긴 구간이라
- 아무튼 화장실가서 새로운 한국분들과 서로의 고생을 격려하며(?) 얼굴을 트고, 작년 참가자분의 경험을 들으며 아직까지는 멀쩡하게 세수와 양치를 할 수 있었다. ㅋㅋㅋㅋ  




아침 밥
- 텐트로 돌아와 아침밥을 먹어보려고 하는데 안그래도 몸이 피곤하니 입맛도 없고 아침 일찍이라 식욕도 없는데 전에 먹어보지 않은 건조식이라며 꺼내온 것이 비프+감자.... 이건 쌀이 없는 거지 않느냐! 라고 주장해봤지만 먹어보자는 오빠 말에 나도 하나 주워왔으니 더 뭐라 할 수는 없고 ㅠㅜ 암튼 물을 끓여 부어넣고 익기를 기다리며 함께 준비해온 미역국 블록을 먼저 먹었다. 역시 우리 입맛엔 국물이지! 따땃하고 짜가운 국물이 들어가니 살 것 같구나 ㅠㅜ 
- 이 국물 블록에 대해 할 말이 있지! 피엘라벤 대회를 위해, 내가 이걸 가져가서 먹을라고 독일에서 주문을 했단 말이지! 작은 크기라 부피도 무게도 안나가고 미역국 북엇국이면 아주 노말한 입맛이니까!!! 그런데 그것을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 구박에 눈치에!! 내가 서러워서 ㅠㅜ 겨우 두개만 주섬주섬 허락받고 넣었는데!! 그걸 두고두고 후회를 했다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컵라면도 말할 것도 없고! 더 가져오려고 했는데 그걸 거기까지 가서 왜 먹냐 건조식을 나눠주는데! 라며 또 구박을 하더니!! 결국 그런 자신을 뉘우치게 되었지....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데서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이니 이런 마음은, 생각은 제발 넣어둬 ㅠㅜ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 나는 못 먹는다고 그런 거! 
- 무튼 결론은 아침으로 먹은 비프+감자가 내한테는 너무 느끼하고 맛이 없어서 한 두 숟갈 억지로 먹다가 말고 미역국으로만 떼우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게 둘째날 그렇게 힘들게 걷게 하는 원인이 된 줄은 나중에 깨달았다. 
- 음식은! 산행에서는 먹은 만큼 걸을 수 있다고 중간에 만난 언니가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우리는 체험했다. (간증 아님) 음식은! 힘들어도 피곤해도 평소에 좋아해서 잘 먹던 거, 부피 무게 가벼워서 가져올 수 있은 거! 그런 거 잘 챙겨와서 충분히 먹어야 한다. 나처럼 가려 먹는 사람은 안 먹어본 음식에 도전 같은 건 여유있을 때나 하는 거다. 그마저도 나는 사실 안 좋아하지만.... 아니아니 기본적으로 난 한식일수밖에 없는 것 같다.  





출발 08:00
- 다행히 전날 밤에 어둡고 추웠던 것에 비해(여전히 춥기는 하지만, 왜냐하면 케브네카이세는 스웨덴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 때문이다. 사실 스웨덴에 산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무튼, 가장 높은 산이라 춥춥) 아침에는 해가 쨍쨍 나서 또다시 기분좋은 출발은 할 수 있었다. 
- 문제는 우리가 8시에 출발해서 (다른 날들에 비해) 늦지 않은 출발이었는데, 바로 앞에 가는 참가자들이 이상한 길로 가는 바람에 초반에 길을 잘못 탔다는 것이다. 키루나를 거쳐 아비스코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쿵스레덴(왕의 길 *여기에 대해 또 할 말이 많지)에는 피엘라벤 클래식 참가자들 말고도 개별적으로 하이킹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과 구별하기 위해 형광 오렌지 표식을 나누어 준다. 처음에는 뭐 이런 걸 다 주나 하고 대충 배낭 위에 묶어놨는데 대회 루트를 따라가는 참가자들에게 길잡이 역할도 하는 아주 훌륭한 녀석인 것이었다. 멀리서도 잘 보이니까 보면서 길을 찾아갈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 가끔 헷갈리는 길들도 나오기 때문에. 근!데! 그 표식을 단 사람들이 갑자기 우리를 가로지르더니 다음 포인트까지 가는 길목에서 산등성이를 따라 윗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별 생각없이 그들 뒤를 따르고 있는데 한참 가다 보니 저 아랫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텐트들, 그리고 표식을 단 참가자들의 일자 행렬이 한참 밑에서 보이는 것이다. 뭐지? 뭔가 묘하게 쌔했지만 돌마다 빨간 표시도 있고 하니까 저 앞에서 만나는가보다, 이 길이 더 빠른가보다 하며 계속 나아갔다. 근데 길이 만날 생각을 안 하는 거다. 약간 멘붕하려고 하는데 맞은 편에서 한 젊은이가 오길래 이쪽 길을 따라가면 우리가 가려는 산장과 체크 포인트가 나오는 지 물어봤다. 하니 하는 말이, 그런 건 나도 여기 처음이라 모르겠고 쭉 따라가면 산장이 하나 나오긴 하는데 산을 넘어야 해 몇개쯤. 라고 한다. 흠... 이것은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 가고 있다는 소리 ㅋㅋㅋㅋㅋ 결국 산 위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방향으로 덤불들이 자라난 이건 뭐라 해야 할지 암튼 푹신하지만 길이 아닌 길을 가로질러 씩씩하게 내려갔다. 그리고 눈 앞에 놓인 계곡 물을 바라보며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대회 자원봉사자같은 사람이 우릴 보고 엄지척 하길래 어떻게 건널 지 모르겠어 의미의 어깨 으쓱을 했다. 그 사람은 곧 아랫쪽을 가리키며 다리로 건너오라고........ 하아..... 다시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 다리를 건너고, 그렇게 우리는 남들보다 1.6km를 더 걸었다 ㅋㅋㅋㅋ 
- 종종 이렇게 혼란스러운 길 선택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었는데(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짐 ㅋㅋㅋ) 그럴 때마다 거의 왼쪽이 옳은 선택이 되었다(결론적으로)  







산행

- 그렇게 우리는 벼라별 길을 다 걷게 된다. 산길, 숲길, 흙길, 돌길, 자갈길, 모랫길, 물길, 진흙길, 다리, 눈길, 풀길, 나무판잣길, 슾지길, 급경사길, 돌길2(너덜길?), 호숫길 ㅋㅋㅋㅋㅋ 
- 그러니 잠시 쉬면서 물에 발도 담그고(엄청 차가우므로 한 일초만) 누웠다가도 가고(* 매트매트 지라이트 매트: 여기서 이 장비를 언급하지 않고는 갈 수가 없는데, 이번 피엘라벤 클래식을 준비하면서 장비 일체를 신랑이 죄다 알아보고 공부 및 검색해서 결정/구입 하였는데 내가 왜 샀냐고 구박했던 삼대 장비 중 하나가 바로 이 매트이다. 일단 부피도 커보이고 별거 없어보이는 애가 가격은 비싸니 사야 할 이유를 모르겠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정말 내 페이버릿이 되어 버릴 줄이야!!! 일단 펼치기 편하고, 돌위에 놓고 (삐죽한 돌 말고) 깔아도 푹신하니 사용감 좋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기능이 있다는데 눕거나 앉았을 때 따뜻하기까지 하고! 덕분에 에어 매트대신 잘 때 쓸 수도 있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제일 먼저 펼치라고 성화! ㅋㅋㅋㅋ 구박한게 미안할 정도로 아주아주 괜찮은 녀석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컵라면도 두 개나 끓여먹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냄새 좋다고 ㅋㅋㅋㅋ 당연하지!!!! 진짜 꿀맛!!!

진을 보며 되새김질을 해봐도 내가 이곳에 있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왠지 꿈꾼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걸어다니면서 눈이 감겨와 살짝 살짝 졸기도 해서, 내가 걸어다니는 건지 몸이 걸어다니는 건지... 점점 표정도 얼굴도 썩어가기 시작하는 날! 발도(오빠) 무릎도(나) 망가지고 ㅠㅜ 



무릎
추운 돌 위에서 점심을 먹고 계속 남은 길을 걸어간다.
그래도 밥을 먹으니까 몸도 따뜻해지고, 기운도 나는 것이 싱이까지 가서 밥을 먹겠다는 미친(?) 결심을 했던 내가 무색하게 너무나도 좋았다. ㅋㅋ 진짜 이 날은 가는 길이 어찌나 힘이 들던지.. ㅠ_ㅠ 제일 우려했던 허리는 오히려 산행 내내 너무나도 멀쩡해서 짐이 짐같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 날 맞닥뜨린 내리막길, 싱이 거의 다 와서 만나게 된 내리막에서부터 시작된 무릎 나감이 대회 종료 후까지 계속 이어진다.  
 
훈련 
싱이가 1km쯤 남지 않았을 무렵, 중간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만나게 된 한국에서 오신 6그룹 산악회(?) 분들이 있는데, 그 중 총무님이라는 분께서 무척 걱정해주시며 무릎 보호대를 빌려주셨는데, 덕분에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무릎이 아픈 것은 노르웨이 이후 처음이라 미처 생각치를 못했는데.. 이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4박 5일 동안 실전으로 체득한 것들이 있는데, 결국 훈련이라는 것은 나 자신의 한계와 취약점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성장하기 위해서, 나아지기 위해서 필요하기도 하지만 이런 하이킹에서는 내가 얼마만큼 걸을 수 있는지, 얼마만큼 질 수 있는지, 어디가 쉽게 아픈 지 등등 나에 대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훈련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훈련을 실전처럼 이라는 소리가 있는 건가... ㅋㅋ 실전처럼 안하면 모를 것 같아서..  
 
싱이 도착 15:30 
도착하니 앞서 우리를 질러갔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책을 쓰기 위해 왔다는 작가 언니와 거의 산악 전문가 언니, 6그룹 산악회 아저씨들 ㅋㅋ 또 누구 봤는지 모르겠지만 기억이 안난다. 너무 힘이 들어서.. ㅠ_ㅠ  
 
수바스 
이곳에서는 수바스(souvas)를 주는데, 이게 smoked reindeer를 링건 잼과 매시드포테이토 곁들여서 얇은 빵 (뭐더라)에 랩해서 주는데 나는 도저히 힘들어서 먹을 기운도 없고 좋아하게도 안 생겨서 오빠가 기껏 두개 받아왔는데 겨우 한 입 먹고 버려 버렸다. ㅠ_ㅠ 그 쓰레기도 우리가 다 데꼬 가야 하는데.. 그러게 내가 한 개만 받아오라니까... 겨우 맥심 커피 한 잔 마시고, 좀 누워 있다가 기운을 차려서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휴식
진짜 처음이라, 이런 장기 백패킹은 아는 거 하나 없는 일자 무식이라, 처음 둘째 날까지는 쉬는 방법도 몰랐던 것 같다. 그냥 일단 물집 안 잡히기 위해 쉴 때는 신발이고 양말이고 벗고 식혀줘야 한다는 것만 어디서 흘끗 보고, 페이스도 없이 무작정 가다가 쉴 때는 철푸덕 앉아서 쉬기만 하고, 제대로 된 밥도 안 먹었는데 행동식(에너지바 혹은 초콜렛 등등)도 안 먹고 마냥 누워만 있었다. 이때는 물도 제대로 안 마신 것 같다. 워낙 물 마시는 습관이 안 돼서 마시는 게 오히려 어색함. ㅋㅋ 게닥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나란 여자... 조금 쉬다가 바람 불어 추워지면 또 추워서 가만히 못 있겠으니까 충분히 쉰 것 같지도 않은데 다시 또 걷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걷다가 서서 잠시잠시 쉬면서 물 한 모금 마시면서 페이스 조절 하면서 갈 수 있었지만... 참.. 무식했다.. ㅋㅋ  
 
섈카 21:00 전 도착 
정말 너무 힘든 날이었어서, 배터리가 나간 탓도 있지만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겨우 그 날 안에 도착한 걸 감사하며... ㅋㅋㅋ 다행히도 밤 9시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섈카 산장은 주변이 텐트 칠 장소가 널렸다고 하던데, 정말 너른 들판처럼 산장을 중심으로 숙영지가 펼쳐져 있는 데다가 바로 옆에 물이 철철 흘러 넘치는 개울가가 있어서 텐트 치기가 너무 좋은 장소였다. 왜인지 정말 정말 아주 추운 것만 빼면... ㅠ_ㅠ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으니 얼른 자야한다. 이미 씻는 것 따위는 다 잊었다.  
 
맥주와 콜라 
이미 지쳐 쓰러진 나를 위해 모기향을 피워주고, 덜덜 떨고 있는 나를 위해 텐트를 후다닥 쳐준 (나도 고양이 손만큼 도왔음) 오빠는 저만치 멀리 있는 매점까지 가서 맥주와 콜라를 사왔다. ㅠ_ㅠ 맥주 한 모금 마실 기운도 없었지만 그래도 콜라는 다르지. 설탕 물이니까 ㅋㅋㅋ 바로 옆에 텐트를 친 산행 전문가 언니와 작가 언니에게 하나씩 맥주를 나눠주고, 텐트 안으로 쏘옥! 무릎을 절뚝거리며 절절 매는 내가 안 됐는지 본인들 위해 가져온 먹을 것들과 파스들을 나눠 주는데... 정말 고생을 같이 해 본 사람들끼리 생기는 그 뭔가의 애틋함이 너무 고맙고 고마웠다. 이런 도움 받을 거라고 생각도 못해봤는데... 정말 나 이걸 되게 우습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