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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군 in Sweden / Germany

피엘라벤 클래식 2015 다섯째날 본문

Travel/피엘라벤 클래식 Fjällräven Klassikern 2015

피엘라벤 클래식 2015 다섯째날

양장군 2015. 8. 12. 23:59

다섯째 날 20.5km
아비스코 야우레 산장 - 아비스코 국립공원 - 아비스코 롯지 



마지막 날 아침

아침이 밝았다. 눈을 뜨니 또 6시 무렵... 집에서는 알람을 그렇게 맞춰놔도 일어나기 힘든 시간인데... 이 곳에서만큼은 눈이 번쩍번쩍 떠진다.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아님 비오던 어제와 달리 쨍하게 뜬 햇살 덕분인지, 다른 날들과 달리 조금은 더 기운이 나서 아침부터 슬금슬금 걸어서 아침밥 해먹을 물도 떠오고 (기특 기특) 아침 식사를 할 준비를 했다. 어제 비가 온 때문인지 숲속 흙길과 다리들이 미끄럽다. 아침을 먹고 침낭과 매트를 정리하며 짐 정리를 다시 하는데, 도대체 우리 텐트 주변에 어떤 애들이 자리를 잡은 건지 아침부터 우리 집 앞에서 시끄럽게 이야기하고 껄껄대고 밥 먹고... 아놔.. ㅋㅋㅋ 출발 직전에 우리보다 하루 먼저 출발한 한국 팀들 중 한 분이 새벽 3-4시에 이름 부르고 떠드는 건 한국 사람 밖에 없다고 조심하자고 올린 글을 봤는데.. 물론 새벽 3-4시가 아니니까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뭐 다른 나라 애들도 조용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러니 조심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걱정해서 나중에는 대회에서 참가 제한을 둘 것이라느니 하는 생각은 천천히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출발, 약간 비

마지막 날인데다가 전날 조금 더 많이 걸었으니까 오늘은 천천히 여유있게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 느즈막히 텐트를 걷고 출발하려고 했는데,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떨어진다.아놔, 이러다가 텐트 다 젖겠다 싶어 짐을 싸던 손을 재게 움직여 부지런히 자리를 정리하니 어느 덧 8시가 넘었다. 우리 앞에 친 건장하게 생긴 언니들이 너네, 짐 되게 잘 싼다! 퍼펙트해라며 추켜세워주고 ㅋㅋ 서로 무릎 안좋은 것 같은데 힘내자 격려하며 우리는 먼저 길을 나섰다. 아무래도 비가 조금 올 것 같아서 우비는 안 꺼내입었지만 가방은 젖으면 슬플 것 같아 레인 커버를 씌워줬다. 비 때문에 약간 낮아진 기온으로 추위를 느끼며 점퍼에 비 잠바까지 단단히 입고나니 이제 드디어 출발! 어제 곯아떨어지느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캠핑장은 화장실 다녀오면서 한 번 훑어보고! 이제 피니시 라인을 향해 걷는 일만 남았다.  





날씨 맑음, 그리고 좋다 

1km도 걷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기 시작한다. 우비를 입거나 레인 커버를 씌웠던 사람들 중 몇몇은 잠시 멈춰서 복장을 다시 가다듬는다. 걷기에 좀더 편한 복장으로 정리를 하는데, 걷는 데 탄력이 붙은 우리는 일단 그냥 간다. 앞만 보고 ㅋㅋㅋ 가는게 좋다. 날씨가 좋고, 풍광이 좋다. 여전히 무릎은 쑤시지만, 너무나도 좋다. 마지막이라 그리고 걷기 편한 길이라.  




6.5km를 거의 쉼없이 걸었다. 아비스코 국립공원의 일부인 이 마지막 구간은 차(라고 해봐야 아마도 작은 사륜구동?)가 들어올 수있도록 나무 데크를 레일처럼 깔아놓아 평평한 길 위에 더 쉽게 걸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대부분이 나무 데크와 평평한 길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속도를 내서 갈 수 있었다. 물론 풍경이 좋아서 여유를 부리며 느즈막히 갈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왠지 모르게 어서 이 길을 걸어내고 싶었다. 걷는 와중에 들어오는 풍경들은 굳이 사진이나 눈에 담지 않아도 저들이 알아서 달려들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간간히 보이는피니시 라인까지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사인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어 반갑기도 했지만, 저 남은 실제 거리와 내가 걸으며 느낄 체감 거리는 또 얼마나 다를까 싶어 차라리 안 보이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도 들게 하였다.





조금 걷다 보니 우리보다 먼저 앞서 가던 산 언니도 다시 만나 따뜻한 물에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면서 수다를 떨며 잠시 긴 휴식을 취했다. 언니를 다시 만나기 전에는 예전에 봤던 티비 프로그램, 리얼체험 세상을 품다에서 박재민이 피엘라벤 클래식을 걸었을 때 싱이 지점에서 낙오되었었던 카메라 감독 아저씨를 마주쳐 잠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그 때 얼핏 봤던 기억이 남았는 지 알레스야우레 산장에서도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의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키에룬 포인트에서 그 아저씨가 카메라를 들고 가는데 kbs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혹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만났던 6그룹 분들을 통해 알고보니 이번에는 걸어서 세상속으로 프로그램을 통해 피엘라벤 클래식을 보여줄거라고 다시 참여하셨다는데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휙휙 걸어나가며, 중간 중간 촬영도 한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더 오고 싶게 되었다고 말하니 많은 분들이 보셨나보다면서 바이블인가요? 뭐 이런... ㅋㅋㅋ 쨌든 전에 참가했을 때 보다 훨씬 즐겁다고 감상을 전하는데, 정말... 내년에 다시 참가하면 그럴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과연 그렇게 즐거울지 어떨지는 아직까지는 힘들었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올라서 내년에도 반드시 참가해야지 하는 결심하기가 힘들다. ㅋㅋ 
 



산 속의 평원을 가로지르는 것 같은 기분을 주는 구간을 지나 6km를 남겨둔 지점을 지나니 이제는 흐르는 물을 만나게 되는데, 어찌나 물들이 콸콸콸콸 시원하게 흐르는지 소리만 들어도 시원하고,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셋째날쯤 지나면서 물집이 생기기 시작한 오빠는 물에다가 발이라도 씻어야겠다고 양말을 벗고 들어갔는데, 차가운 물에다가 한참 담그고 나니 남은 길을 또 걸어갈 기운이 솟아났다. 원래는 중간에 쉬면서 점심을 먹고 가려고 했는데, 가다보니 표지판은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하고 알리고 있고, 컨디션은 생각보다 꽤 괜찮아서 더 걸을만 하다. 그래서 점심은 도착하면 먹자고 결정하고, 계속 걸었다. 








쿵스레덴
우리는 왕의 길을 걷고 있다. 확실히 아비스코 국립공원이라 그런지 길도 편하고 보는 장면 장면이 아름답다. 표지판을 따라 정신없이 걷다보니 어느 덧 5km 남았다고 한다. 아쉬움따위는 전혀 없다 ㅋㅋㅋ 이제 곧 도착할 것 같은 생각에 들떠 걸음을 계속 재촉하였다. 가끔씩 사람이 보이지 않아 헷갈릴 때는 우리 나름대로 내린 결론에 따라 왼쪽 길을 쫓아 가거나, 한 줄 나무 데크 길 보다는 두 줄 나무 데크 길을 따라 걸었다. 일단 왼쪽으로 가면 원하는 목적지에 보통 이르기 마련이었고, 한 줄이든 두 줄이든 걸으면 다시 만나는 게 보통이었지만 그래도 사륜차가 다니는 길이 널찍해서 우리 걷기에도 훨씬 편했다. 섈카 지점에서 우연히 알게 된 덴마크 친구와는 결국 골 지점까지 앞으로 뒤로 어쩌다 보니 계속 마주치게 되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격려하며 완주하였다. 




덴마크에서 온 그 사람은 대회에 혼자 참여했는데, 덴마크에서부터 스웨덴까지 차를 끌고 왔다고 한다. 그 먼 거리를(이 동네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닐지 몰라도) 차로 운전해서, 다시 기차를 타고 키루나까지 와서 4박 5일에 이르는 트레킹 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친구도 나처럼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이나 혼자 다니는 모습이 왠지 안쓰럽고짠하기도 했는데, 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우리보다 약간 앞서 완주까지 해내었으니 뭐 그건 순전히 내 오지랖이었다. ㅋㅋㅋ  
















잠시 길 옆에 흐르는 물가에서 세수도 하고, 다시 한 번 시원하게 발을 담근 후 조금만 더 힘내자 격려하며 내려가는 순간, 눈 앞에 보인다!! 저 아래 집 모양의 무언가가!! 아니 그리고 저 멀리 현대식 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힘내서 성큼성큼 내려가니 갑자기 카톡카톡 소리가 울리고, 메일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ㅋㅋㅋ 그동안 연결되지 않았던 네트워크가 드디어 잡히는 순간이다. 아.. 우리 이제 다시 문명으로 돌아왔구나... 쿵스레덴의 입구와 끝을 알리는 이 지점에 도착하니 (아직 피니시 라인은 아니지만) 이 감개무량한 기분을 형용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혼자 앉아서 다른 일행분들을 기다리던 한국분에게 우리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도 하고, 그 분 사진도 찍어드리고, 덴마크 친구도 찍어주고.. ㅋㅋ 그야말로 살짝 흥분된 우리들이었다. 이제 저 사인만 따라서 조금만 더 걸으면 골인 지점이다! 






도착!!  
할아버지 할머니 커플과 덴마크 녀석 뒤를 천천히 따라서 올라가니 블로그에서 보던, 티비에서 보던 그 도착 지점이 보인다. 이미 도착해서 맥주를 마시고,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 오빠는 올라오며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더니, 한 방울도 안 보여줬다. ㅋㅋ 나 역시 뭔가 움찔 꿈틀하는 것이 있는가 싶긴 했지만, 눈물이 나진 않았다. 해냈다는 기쁨, 드디어 끝이라는 해방감 때문인지 성취감과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은 아직 감동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ㅋ 게다가 역시 마지막이 되면 왜 이렇게 지치고 힘이 드는지(아마 점심을 안 먹어서 일거다싶지만) 어서 어깨에 맨 이 가방을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앞에 가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피니시 라인에 들어가기 전 여유있게 사진도 못 찍고, 박수를쳐주는 사람들에게 손이나 흔들면서 마지막 체크 포인트 텐트 뒤에 짐을 벗어던졌다.   



드디어 끝이다. 
이제 막 시작했던 것 같은데, 과연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이 바로 조금 전 같은데... 여운을 되새길 새도 없이 완주 메달과 최종 기록을 체크하기 위해 링건베리 주스를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 앞에 줄을 섰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 상장을수여하듯 나눠주는 것은 아니고, 체크포인트마다 도장을 받았던 노트를 수거하듯 가져가 기다리고 있으면 나눠줄테니 가서 쉬고 있으라고 이야기 해준다. 그래도 성미급한 나는 오빠가 쉬고 있는 동안 텐트를 기웃거리면서 언제 우리 메달을 주나 하고 목을 빼고 있었다. 역시나, 외국인 이름이라 쉽게 발음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근처에서 서성이다가 귀신같이 오빠 이름과 내 이름을 듣고 후다닥 받아왔다. 완주 메달을 나눠주는 분위기는 열심히 걸어온 것에 비해 격식도 시스템도 없는 주먹구구식의 일처리 느낌이라 굉장히 성의있게 일을 잘 해놓고도 쓰윽 넘겨진 기분이 들어 밍숭맹숭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함께 놓고 다시 한 번 보니 이걸 받으려고 우리가 이렇게 걸었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이게 우리가 열심히 끝까지 걸었다는 징표구나 싶어 허무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쓰레기와 배낭  
오빠는 끝무렵 잡힌 물집때문에 더욱 지쳤는지, 매트를 깔아놓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끝이 나니 나는 오히려 체력이 어디서 났는지, 아비스코 캠핑장을 헤매고 다니며 뭐가 있나 기웃거리기 시작했는데, 완주 메달을 나눠주는 텐트 옆에 저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작 전에 이벤트에 대해 공지를 했는데, 가장 무거운 쓰레기 짐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피엘라벤 제품 중 점퍼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말했듯이 대회 내내 자연을 훼손시키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발생시킨 쓰레기는 모두 자기가 가지고 와야 한다. 그런 까닭에 처음 캠프리판에서 체크인을 할 때 쓰레기를 담아서 가져올 수 있는 가방도 나눠주는데,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먹지 않아서 쓰레기가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았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마음에 무게를 재보니 약 2kg. 두명이 나온 쓰레기치고는 많지 않다 싶지만, 중간에 입다 버릴 요량으로 가져온 티셔츠를 넣어서 가지고 오니 그게 제법 무게가 나간 것 같다. 어쩐지... 점점 갈수록 내 배낭이 무거워졌어.. ㅠ_ㅠ 출발 때도 내가 오빠보다 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떠났어서 (비록 내가 더 짊어지고 가겠다고 할 지언정 ㅋㅋ) 돌아온 직후에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 혹시 하는 마음에 내 배낭 무게를 재 보니 약 11kg가 되지 않는다. 열심히 먹었거나(먹을 거리는 주로 내가 들고 다녀서), 열심히 짐을 주었거나.. 오빠에게... ㅋㅋ   







팔라펠 + 수오바스  
점심을 중간에 먹지 않은 것은 그래도 예상보다 일찍 도착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우리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 이른 오후 1시 반 경에 도착했다. 그러니 배가 고프지 않을 수가!! 피니시라인 바로 앞에 있는 천막에 들어가보니 순록 고기를 얇은 빵에 양상추와 소스를 함께 넣어 파는 수오바스와 팔라펠(아마 병아리콩을 이용한?), 맥주와 각종 음료수(라고 해봐야 많은 종류는 아님)를 팔고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열심히 수다를 떨면서 배를 채우고 있었고, 우리도 한 구석에 자리를 맡아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마침 밖에는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해서 사람들이 천막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 피니시 라인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ㅠ_ㅠ 그 환호성과 박수를... 절반이 줄어든.. 환호성과 박수를... 받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너무 배가 고파서 일단 메뉴를 보니 저 두 종류만 먹을 것으로 팔고 있어서 하나씩 주문해서 먹기로 했다. 맥주와 사이더도 시켰는데.. 진짜 ㅠ_ㅠ 더럽게 비싸.. 우리는 2%짜리 마리에스타드 맥주면 충분한데.. 5%가 넘어서 그런가, GULD 밖에 팔지 않으면서 한 캔에 70kr씩 받고 판다... ㅠ_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배가 넘게 남겨 파는 장사라니!! 아놔 여기다가 어묵이랑 호떡이랑 파전이랑 막걸리랑 갖다 팔면 완전 흥할텐데! 뭐 어쨌든 그 순간엔 뭔들 중요하지 않았다. 배 채우고 목 식히는 게 중요했으니.. ㅋㅋ  근데 이 수오바스랑 팔라펠,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너무 너무 너무 맛있다. 1) 배가 고파서, 2) 힘이 들어서 3) 다른 걸 해먹을 힘이 없어서. 아마 이런 이유때문일 것 같기도 하지만, 다 처음먹어보는 것인데도 참말로 맛이 있었다. 케밥 집 가면 맨날 있는 메뉴인데... 원래 낯선 요리를잘 시도해보지 않긴 하지만, 그래서 그렇긴 하지만.. 정말 몰랐다. 맛이 있을 것이라고는... ㅋㅋ 우리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산 언니와 합류해서 함께 나눠먹으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아마 사먹으러 가야할 것 같아... ㅋㅋ 스톡홀름 가면... ㅋㅋㅋ 어디가 맛이 있을까..? ㅋㅋ 




기록  

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완주 기록이 붙여졌다는 산 언니의 제보가 있어 숙박 건물로 들어가보니 길게 뽑은 참가자 명단과 출발 시간, 도착 시간, 완주 소요 시간이 길게 프린트되어 벽에 붙어 있었다. 우리는 약 97시간이 조금 안 되게 걸었는데, 우리로서는 상당히 놀라운 시간이었다. 뚜렷한 목표는 없었지만 100시간 넘게 걸어온 사람들이 위, 아래로 포진돼있어 꽤나 열심히 걸은 기분이 들었다. ㅋㅋㅋㅋ 뭐 그래봐야 의미 없다 의미없어 이긴 하지만... ㅋㅋ   



또다시 걷자  
110km의 여정은 끝났지만, 이제 또 다시 이곳 아비스코에서 스톡홀름까지의 기차 여행이 남아있다. 그런데 기차는 내일 12시에 출발! 하루를 이 곳에서 묵어야 하기에 (원래 나의 계획에의하면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숙소를 예약을 했는데, 오빠가 예약한 그 숙소는 더블 베드가 있는 아니, 트윈 베드가 있는 조건을 달성해야 했으므로 이곳이 아닌 아비스코 마운틴 롯지가 되어야 했다. 또 하나 이 기간에 아비스코 역 근처에는 우리를 위한 빈 방이 거의 있지 않다. 예약 시점은 이미 많이 늦은 상태이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텐트에서 잘 생각이었기 때문에 더 알아보지를 않았지. 아무튼 그곳은 이곳으로부터 약 1.2km 더 걸어 아비스코 östra 역 근처에 있는 곳인데... 갈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어 걸어가야 한다. 이제 끝난 줄 알았던 걷기는 아직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으앜ㅋㅋㅋㅋㅋ 그래도 별 수 없이 예약을 했으니 가긴 가야지.. 천천히 길을 따라 걸으며 동네 구경을 하다보니 여기 아비스코 마운틴 롯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제 씻을 수 있다!! 
(사실 가는 동안, 기차 역 한 구간만큼을 걸어오는 것에 입이 댓발 나와서 불퉁거리며 가고 있었는데, 게다가 도착지 야영장에서 하는 완주 기념 파티도 구경도 못하니... 나중에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동네 구경도 하고,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에서 하룻밤 쉬어갈 수 있어서 괜찮지도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나를 위로하려는 마음가짐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ㅋㅋ) 














생각  

이렇게 긴 거리를 여러 날 동안 걸어본 것은 처음이라 그런지 힘든 것도 많았고, 내 체력이나(몹시 부족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실한 부분에 대해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점도 많았어서 함께 걸었던 오빠에게 의지했던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무릎이 아프다는 핑계로, 체력이 떨어져서 매일 캠핑장에 도착하면 추워서 몸에 오한이 들어 부들부들 떨릴 정도라 텐트를 칠 때도 오빠가 거의 다 하고, 물을 떠 오는 것도 오빠가 다 하고... 정말 민폐라면 민폐, 쓸모를 따지자면 무쓸모.. 아무리 좋게 봐줘도 뭔가 역할을 한 것이 없었던 여정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뭐 역할을 하기 위해 떠난 것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일의 분담은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 오빠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며칠이었다. 나의 한계 (라고 하기엔 왠지 극단으로 치달아야 할 것 같아서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를 몰랐던 것이 제일 아쉬운부분이었고,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서 걷는 동안 정말 다행이었고 고마웠으며, 제일 크게 걱정했던 둘간에 큰 싸움(?) 없이 다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뿌듯하다.   
 
훈련  
나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무엇보다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고 (나를 단련하는 의미도 있지만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지를 알 수 있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실전을 통해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으니 뭔가 앞, 뒤가 바뀐 것 같지만 그래도 게으름 중에 상게으름뱅이니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뭔가의 가치를 알게 되는 일은 드무니까 값비싼 실전 훈련을 치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반성  

다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단 알고나서 다 나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가졌던 편견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이 짧은 기간 동안에도 여러번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뭐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고, 나에게 안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좋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여기에서 짧게 스쳤던 만남들이 모두 좋게 남아 있어서 어쨌든 여러번 반성했다. 많은 도움을 받았고, 많은 배움도 얻었다. 특히나 우리같이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사람들 속에 없었더라면... 생각하면 좀 아찔하다. 서로에게 열린 마음이 110km라는 먼 거리를 함께 걷는 특수한 환경 속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또 그런 까닭에 이 대회를 택한 것도 있다. 만약에 내년에 한번 더 오게 된다면 산 언니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일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경험  

대회에 대한 경험은 어땠을까.  일단 생각보다 경로에 대한 직관성이 아주 좋지는 않았다. 숙련자에게는 적당한 수준의 안내가 이루어졌을 지도 모르겠지만, 길을 한 번 잃어본 초보자로서는 경로의 안내가 적절한 수준에서 이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1년 중 일주일, 약 2000여명의 참가자만을 위해서 최대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기준 아래 부가적인 경로 안내는 낭비적인 것일수도 있겠지만, 참가자들의 주의를 한 번 더 환기시킬 수 있거나, 보다 명시적인 컬러 또는 심볼을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