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day Sweden

이 동네 고양이들

양장군 2011. 11. 3. 05:58
어느 날 아침 
오빠가 출근을 위해 일어나면 나도 부스럭부스럭 거리면서 슬금슬금 일어난다.
아직도 시차 적응이 안 된 것인지 6시나 6시 반만 되어도 눈이 번쩍 번쩍 떠지니 신기한 노릇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창문 블라인드를 열어 조금이라도 햇빛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데, 블라인드를 열고 소파에 앉아 있으려니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우리 집을 흘끗 쳐다 보고 가는 게 느껴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나도 구경하고, 그들도 나를 구경하니 늘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밖을 쳐다 봤더니 엄머나! 우리 집 앞에 있는 테이블에 왠 큼지막한 고양이가 자리잡고 앉아 있는 것이다.


엉덩이가 펑퍼짐한 게 덩치가 꽤 되어 보인다.


창문을 똑똑 두들기니 고개만 슬쩍 돌려서 우릴 쳐다 본다.

왜 우리 집 앞에 앉아 있을까... 궁금하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는 없네. 말이 안 통하니..
 


괜히 기분이 들떠(사람과 이야기를 해본 지가 꽤 돼서)
뭘 줘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집에 있는 소세지는 돼지로 만든 거라 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돼지고기로 만든 소세지를 먹고 돌연변이 또는 호문쿨루스.. 등이 될 것 같은 상상을 함) 가장 무난할 것 같은 우유를 생각해내 허둥지둥 1회용 접시에 우유를 담아서 내 주었다.
(내가 허둥대는 새에 오빠는 출근해 버렸다)


우유를 주기 위해 테이블 근처에 가까이 가도 이 펑퍼짐한 녀석은 움직일 생각을 조금도 안 한다. 
일단 우유를 주고 마시라고 하니까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우유를 먹기 시작한다.
왠지 기분이 조금 흐뭇해지기도 하고, 소세지를 주지 못한 사실에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금 먹다 말고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더니 입맛을 다시는 게 아닌가.
(그때 이미 나는 우유를 주고 현관 문에 반쯤 몸을 넣고 머리만 내밀고 고양이를 보고 있었다)


아 그 때의 살기란...(분명 난 그렇게 느꼈다 ㅠ_ㅠ)
이가 무척 뾰족해 보였다.
마치 당장이라도 날 향해 달려들 것 같은 눈빛과 표정이었다.
그 날 아침 날씨는 해도 별로 없고, 우울한게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지니고 있었지만... (사진으로 보니 그리 어두워보이는 날씨는 아니군 ㅋ)
그런 까닭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말 반가웠었는데.. 너무 무서워졌다. 

집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블라인드 사이로 그 녀석을 쳐다보는데 이놈이 소리도 안 냈는데 고개를 슬쩍 돌리더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쳐다보는 게 아닌가.
(슬쩍 고개만 돌려서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비명은 지르지 않았지만 어쨌든 말로는 좀 무서웠다.
그래서 더 이상 그 녀석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밖을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2-30분쯤 흘렀을까..
그 녀석은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그 녀석은 또 우리 집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엉엉 ㅠ_ㅠ 무서워서 우유도 안 줬어. 우유 얻어 먹으러 온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오빠에게 하니 오빠는 이 동네에 그렇게 왕래하는 고양이들이 많은 갑다 하였다. 출근/퇴근길에 어슬렁 거리는 고양이들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고나서 이틀 뒤 나도 밖에 나갈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고양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왠지 이 동네 고양이들은 덩치가 커. 작은 아이들이 별로 없어.
개들도 큰 걸.. 황소 개들이야.. 우리나라에서 보통 애완용으로 데리고 다니는 개들은 주로 강아지일 것 같은 작은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여기는 작은 개를 보는 것이 드물 정도로 나다니는 개들이 대부분 무척 크다(근데 눈은 무척 예쁘다. 신기한 것은 스웨덴 아기들이나 동물들은 우릴 보고 신기한 지 눈을 맞추고 계속 쳐다본다).

그나마 작아서 찍어봤는데 무심히 지나간다.

곧이어 나타난 고양이. 마치 가필드를 연상시키는 털 색과 생김새다.
10월 말이 되어도 쌩쌩한 초록색을 유지하고 있는 잔디와 이녀석의 털 색깔과 흩어진 낙엽이 꽤 어울린다.


며칠 뒤, 오빠와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 집 앞에 앉아 있던 그 고양이 녀석을 집 근처 벤치에서 만났다.
마치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무심히 앉아 있다. 
왠지 조금 서운해졌다(그렇게 무서워해놓고..).

다음에 오면 우유 줄게... (오빠가 집에 있을 때 오렴 부디)